세계 문학의 집-1
콜럼부스의 테네시 윌리엄즈 생가딸네가 살고 있는 미시시피주의 메리디안에서 콜럼부스까지는 북쪽으로 약 88마일 거리다.지난 주에 윌리엄 포크너를 찾아 외손녀랑 약 3시간 거리에 있는 그의 생가를 방문한 전력도 있는 터라, 이번에는 테네시 윌리엄즈를 만나기 위해 그의 출생지로 외손녀와 함께 출발했다.비가 내린다. 제법 굵은 빗방울이 발목을 잡기는커녕, 미국 남부의 특징인 찌푸린 잿빛 하늘과 음습함이 오히려 낯선 곳으로의 여수를 자극했다.윌리엄즈가 1911년 3월에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냈다던 이곳은 상당히 유서 깊고 고풍스러운 도시로 알려져 있다.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가득 채우고, 외손녀를 시켜 여행 안내소를 물어 약도를 받아 찾아간 곳은 하얀 이층 양옥이었다. 좀 색다르다 싶어 다가가 살펴보니 그가 태어난 집이라고 새겨져 있다. 출입문을 열려니 문이 잠겨 있다. 그때 마침 중년의 백인 여성이 나타나 점심 시간이니 정각 1시에 오란다. 그 교회가 바로 윌리엄즈의 외할아버지가 세운 것이란다.낯선 동양인의 느닷없는 방문이 신기했는지, 늙수그레한 신사 한 분이 내게 다가와 정중하면서도 근엄한 표정으로 설명을 한다.윌리엄즈는 이 교회의 목사관에서 태어나 강보에 싸인 채 그 이층 양옥으로 옮아 자랐다고 한다.이곳 콜럼부스에서는 해마다 9월 9일에서 12일까지 이 작가를 기리는 행사를 갖는데, 오늘이 그 마지막 날이라 방송국에서 취재를 나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곳은 쥐죽은 듯 조용하고 그를 위한 행사를 알리는 포스터조차 구경 못하니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뒷날 윌리엄즈는 이곳을 회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이 집은 유년 시절의 추억이 서려 있으며, 미시시피는 나에게 창작의 바탕을 만들어준 곳이다. 그리고 내 청년 시절의 암울함과 데카당도 미시시피의 광활한 대지에서 형성되었다.”그는 자신의 회상처럼 미시시피를 떠나 미조리주의 세인트 루이스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미조리 대학과 워싱턴 대학을 전전했으나 중퇴하고 아이오와 주립대에서 연극을 전공했다. 졸업 후 그는 호텔의 벨보이, 영화관의 수위, 나이트 클럽의 웨이터를 하는 등 암울한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남부(미시시피, 미조리, 루이지애너 등)에서 보낸 시간들이 그의 생애를 통해 오점이라고 평했다.그에게 퓰리처상과 뉴욕 연극평론가상을 안겨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여주인공 블랜치나 <유리 동물원>의 톰, 다시 퓰리처상과 뉴욕 연극평론가상을 수상한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 등에서 보여준 어두운 분위기는 이때 그가 체득한 영향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이층 양옥은 전시실 겸 여행 안내소를 겸하고 있는데 3명 정도의 여성들이 안내를 하고 있었다. 모두 자원봉사자들이라 했다. 이층은 닫혀져 있었고 일층 거실이 전시실이었는데, 한 마디로 초라하고 성의 없는 분위기였다.윌리엄즈의 육필 원고나 그가 사용했음직한 타자기, 아니면 손때 묻은 유품이라도 기대하고 둘러보았건만, 벽에 사진 액자들만 걸려 있을 뿐 무엇 하나 눈요기감은 없었다. 그래도 돈벌이에는 지독한 그들인지라 윌 생가에 그의 초상을 합성해 그린 액자를 25불에, 그리고 주먹만한 생가 모형을 만들어 30불에 팔고 있었다. 그래도 허전한 마음에 액자 하나 사가지고 나왔다.매년 9월에 이 행사를 가질 정도로 그를 기리고 있다는 점 외에, 내가 보기에는 미국 연극에서 가장 힘 있고 즐거움을 주는 인물을 창조한 이 거장에 대하여 거의 박대에 가깝다고 느꼈다.2차 대전 후 미국에 등장한 심리적 사실주의의 거장, 관객에게 충격과 즐거움을 동시에 줄 수 있는 연극적 우화를 무대 위에 표현하고, 언어와 행동의 미묘함을 고도로 녹여내는 이 마술사의 작품은 세계의 곳곳에서 쉴 새 없이 공연되고 있다.
(출판인)
* 위 자료는 "문학의 집 서울" 소식지에서 옮겨왔습니다. 매월 연재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