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저깨비와 「지저깨비들」
지저깨비는 나무를 깎거나 다듬을 때 떨어져나오는 잔조각을 말한다. 중심이 아니라 변방이며 주인공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엑스트라이다. 1966년 이주홍 선생은 거침없는 입담으로 지저깨비들의 삶을 소설에 담아냈다. 음악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밴드 비틀즈가 등장한 1960년대는 문화와 정치적 자유주의가 급속히 퍼져나가던 시대이다. 서구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구시대 유물을 완전히 청산하지 못하고 신구문물이 어지럽게 공존하던 때이기도 하다. 소설은 자동차와 지게꾼이 함께 거리를 활보하던 시기에 막노동 지게꾼의 삶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단편소설 「지저깨비들」은 1966년 현대문학 10월호(통권142호)에 발표한 뒤 1971년 출간한 이주홍 단편집 『海邊』(해변)에 수록되었다. 이후 1977년 동서문고 『지저깨비들』의 표제작으로 다시 한번 출간된다. 소설이 발표되고 반세기도 더 지났지만 지저깨비들의 사정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오늘도 감당하기 힘든 짐을 지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지저깨비들이 이 소설을 읽고 현실을 직시하는 동시에 작은 위안을 받길 바란다.
『海邊』(해변)과 「지저깨비들」
이주홍 단편집 『海邊』(해변)은 1971년 을유문화사에서 출간한 선생의 두 번째 단편집이다. 『海邊』의 장정을 선생이 직접 했는데 비지(扉紙)와 속컷으로 영애 은아씨가 네 살 때 그린 그림을 넣은 것이 특징이다. 「지저깨비들」에 그려진 은아씨의 그림이 재미있다. 지저깨비를 닮은 사람과 그 뒤로 펼쳐진 산, 그리고 산 위에 뜬 별처럼도 보이고 달처럼도 보이는 작은 동그라미가 소설의 주제 의식과 전체적인 분위기와 절묘하게 닮았다.
『海邊』 후기에서 선생은 ‘작품은 곧 발언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보는 것일 뿐이다. 인간으로서의 원초적인 몸부림인 것이거나, 자기가 처해 있는 환경의 부조리에 저항을 하는 것이거나, 필경엔 발언 이상의 것일 수가 없다.(하략)’고 말한다. ‘작품은 곧 발언’이라는 말을 잘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가 바로 「지저깨비들」이다.
「지저깨비들」에는 지게꾼 세 명이 주요 인물로 나온다. ‘미수터’는 복역 중인 깡패 아들을 둔 박복한 지게꾼으로 욕심 많고 다혈질이다. ‘홍대추’는 살빛이 깜붉어서 생긴 별명인데 생전에 지게터를 개척한 ‘홍영감’의 아들이다. ‘울박’은 울산에서 이사 온 박씨로 글도 좀 읽고 예의도 아는 인물이다. 이들은 자동차가 다니는 길에서 지게로 짐을 옮겨주며 생계를 이어간다. 하루 벌어 하루 입에 풀칠하기도 벅찬 지게꾼들은 일을 마치면 언양집에 들러 외상 잔술을 먹는 게 낙이다.
선생은 지게꾼의 비참한 일상을 통해 하층 노동자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그려내어 부조리한 현실을 보여준다. 돈에 눈이 멀어 죽은 친구의 아들 ‘홍대추’의 짐을 빼앗고 그것도 모자라 ‘홍대추’의 파나마 모자까지 탐내는 ‘미수터’의 지질한 모습은 얄밉지만 한편 연민도 느껴진다. 나잇값 못하고 아들뻘인 ‘홍대추’와 쌍코피 터지게 싸우던 ‘미수터’는 ‘홍영감’ 소상 때 자신에게 극진하게 술을 대접하는 ‘홍대추’ 앞에서 그만 무너지고 만다. ‘미수터’는 ‘홍영감’ 영정 앞에 술을 따르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오늘은 자네 덕으로 취토록 술을 마시고 가네만, 내일은 또 자네가 죽을 때까지 그라고 있은 것같이 지게를 져야 하네. 지다가 지다가 우리도 자네와 같이 차 밑에서 숨을 거둘지 모르네. 우리 같은 인간이 어디 사람인가. 잘 사는 놈들 편하게 해줄라꼬 세상에 태여난 지저깨비들이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동안 ‘홍대추’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던 ‘미수터’는 ‘홍대추’에게 자신의 잘못을 돌려서 말한다. ‘미수터’의 심경에 변화를 준 이는 다름 아닌 같은 처지에 있는 지저깨비들이다. ‘홍영감’의 소상에 함께 가자고 한 ‘울박’과 아버지의 소상에 온 자신을 지극정성으로 대한 ‘홍대추’는 은아씨가 그린 그림에 뜬 별처럼 달처럼 ‘미수터’의 마음속 어둠을 밝히는 존재들이다. 결국 지저깨비는 지저깨비들의 연대로 지질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선생은 소설을 통해 여실히 보여준다.
『지저깨비들』과 「지저깨비들」
1977년 동서문고에서 출간한 소설집 『지저깨비들』은 손바닥만 한 문고판이다. 이 책은 전시관에서 단연 인기가 높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표지 그림이 이중섭 화가(1916~1956)이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중섭 화가는 생계를 위해 잡지 등에 표지화를 많이 그렸는데 문학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현대문학(1962년 12월호)의 표지화도 이중섭 화가의 작품이다. 『지저깨비들』의 표지 그림은 이중섭 화가의 작품이기는 하지만 표지화로 그린 그림은 아니다. 소설집이 이중섭 화가 사후에 출간된 것이기 때문에 이미 있는 작품을 표지로 쓴 것이다.
『지저깨비들』의 표지 그림은 일상의 여유가 느껴지면서도 미소가 저절로 지어질 만큼 정답다. 꽃나무에 매인 소가 한가롭게 낮잠을 자고 아버지도 잠시 일손을 멈추고 소 곁에 앉아 쉰다. 소 등에 올라탄 벌거숭이 아이들은 장난을 하고 어머니는 가족들과 함께 먹을 참을 이고 온다. 이 동그란 풍경을 개구리 한 마리가 그 속에 끼어들까 말까 쳐다보고 있다. 느긋하고 간질간질 웃음이 나는 풍경은 지저깨비들이 꿈꾸는 최고의 삶일 것이다. 물빛 같기도 하고 하늘빛 같기도 한 바탕색도 희망적이다.
이주홍 선생과 이중섭 화가의 마음이 서로 통했을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두 거장의 만남이 참으로 멋스럽게 어울린다. 전시관에서 『지저깨비들』을 만날 때마다 선생의 바람처럼 지저깨비들의 삶이 희망으로 푸르게 빛나길 기도한다.
-이주홍문학관 상주작가 강기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