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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영 `누가 문학관을 살리는가 `
글쓴이 : 문학의 집 서울 날짜 : 05.05.18 조회 : 4778

정우영 (문예진흥원 문학특별사업추진반장)

1. 들어가는 말

문학관의 존재 근거는 무엇일까. 두 가지 점이 우선 떠오른다. 하나는, 문학유산의 보존과 전승이요, 다른 하나는, 그 지역 문학활동의 모체 역할이다. 둘 중 어느 것 하나라도 모자란다면 아마 공공기관에서 문학관을 지어주고 지원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 문학관은 기본적으로 문학유산의 보존과 전승, 그리고 문학활동의 모체 역할을 충실히 할 때라야만 공공성을 갖는다. 제아무리 뛰어난 문학관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철저히 개인의 명예욕과 가문의 영광에 복속하는 식으로 운영된다면 공공기관에서 지원해 줄 의미가 없다. 그런 점에서 현재 전국에서 운영되는 문학관의 공공성에 대해 한번쯤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여긴다.(하지만 이 논의는 다음 기회로 미루자. 여기서 다룰 주제와는 다른 영역이다.)


나는 문학관이 제 역할을 수행하면 관광과 문화, 그리고 교육이 동시에 고양되는 굉장한 시너지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멀리 갈 것 없이 김유정문학촌을 예로 들어보자. 지자체에서 신남역을 김유정역으로 개칭해준 까닭은 다른 게 아닐 것이다. 그 기저에는 관광 효과가 깔려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더불어 교육 효과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김유정문학촌을 거쳐간 숱한 사람들은 아마도 마음속 어디인가에 생강나무 같은 아름다운 감성나무 한 그루를 조심스레 키우고 있을 터이니.


그리하여 그러한 싹이 자라나 실레마을을 또 다른 P.E.I.로 만들어 줄 줄 누가 알겠는가. <빨간머리 앤>의 본고장인 캐나다의 P.E.I.(Prince Edward Island,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대개는 그냥 P.E.I라고 부른다)는 캐나다의 13개주에서 가장 작은 주이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매년 5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P.E.I.를 다녀간다고 한다.


지금은 비록 국내용에 머물러 있으나 나는 머잖아 김유정문학촌도 이처럼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본격적인 의미에서의 문학행사 프로그램 개발 연구와 가동이 절실히 요청될 것이다.


2. 본격 문학행사 개발을 위하여


나는 솔직히 ‘본격 문학행사 개발`이라는 용어를 여기에 쓰면서도 어떻게 해야 본격 문학행사 개발이 되는 것인지 잘 모른다. 그야말로 본격적으로 이런 고민에 매달려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굳이 이 용어를 선택한 이유는 이제 우리가 그 고민을 구체화시켜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믿어져서이다.


우리나라에도 30여 개나 되는 적잖은 문학관이 생겨났으며 그 문학관들의 결집체 구실을 해야 하는 문학관협회도 만들어져 있다. 당연히 문학관 자체의 존재 의의와 문학관 연대의 의의 등이 고민되어져야 한다. 고민 없이 좋은 결실을 기대하긴 어렵다. 지원에 기대는 막연한 문제의식 정도로는 존재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아주 구체적이어야 한다. 추리문학관이라면 추리문학관만의 구체적인 사업 기획을 통해 문학행사를 개발해야 할 것이며, 가사문학관이라면 가사문학의 고민, 예컨대 소멸해 버린 듯한 장르의 복원과 현재적 의미 등을 살리는 문학행사 개발에 진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문학프로그램 공모 지원 신청을 받아 본 결과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비록 본격 문학행사가 어떤 형태로 나와야 할지는 알 수 없으나 이런 형태는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내가 보기에 이번 지원 신청서에서 논의할 만한 문학 이벤트는 두 가지 정도가 아닌가 싶다.(<문학 프로그램 지원신청 현황표> 참조)


그 하나가, <김유정 작품 속 30년대 체험>에서 진행되는 ‘김유정 작품 속 캐릭터 찾기`이다. 김유정 작품 속에서 이벤트를 끌어내는 기획도 재미있는데, 거기다가 캐릭터 찾기라는 대중 코드도 붙여 놓았다. 내용은 비교적 단순하다. 김유정 소설 <봄 ? 봄>의 봉필 영감과 비슷한 인물을 찾아내어 시상하고 캐리커처도 그려 준다는 것이다. 이걸 좀더 승화시켜 여러 인물들을 찾아내고 애니메이션과 연결, 문화산업적으로 발전시키는 방안은 없는지까지 점검해 본다면 상당히 의미 깊은 이벤트가 될 수 있을 듯하다. 발상이 참신하지 않는가. 이 시대에 봉필 영감 찾기라?


다른 하나는, 한국문인인장박물관에서 추진하는 <문인 및 일반인 인장 전각 대회>이다. 문인과 일반인이 어우러져 각기 애송하는 시나 글귀 등을 새기는 작업을 직접 해 봄으로써 그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소중한 조형미 체험을 겪어 볼 수 있을 것이라 여긴다. 고구마와 무 등에 서툴게 칼질했던 추억도 떠올릴 수 있을 게고. 이 사업의 의의는 박물관 특색을 그대로 살린 점에 있다. 인장박물관과 인장 파기 체험, 관광 상품으로 내놓아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자기 작품을 가져가게 할 테니 소중한 추억 한 자락 새겨 놓는 셈 아닌가.


반면에, 문학행사인지 뭔지 알 수 없을 만큼 사업내용이 바뀌어 버린 경우도 있다. 예컨대 총예산 4천6백만원 행사에 오케스트라 초청비용이 1천만원이라면 주객이 전도되어도 한참 바뀐 행사 기획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심의위원들이 실무자들에게 특별 관리를 부탁할 밖에. 이 사업들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꾸준히 관리, 감독해 달라고.


<지역문학관 문학프로그램 지원신청 현황표>





























































































































분류


단체명


대표


신청사업명


1


문학제(6)


구상문학관


배상도


 구상 예술제


2


미당시문학관


박우영


 국화향 문학제


3


박화성문학기념관


김평규


 소영 박화성 추모 문학제


4


한국문인인장박물관


이재인


 예산문학축제


5


(사)자연을사랑하는문학의집서울


김후란


 자연사랑 문학제         


6


김유정문학촌


전상국


 제3회 김유정문학제


7


낭송(5)


이주홍문학관


강남주


 문학작품 낭송회         


8


조병화문학관


조진형


 제3회 꿈의 시 낭송회


9


영인문학관


강인숙


 제7회 문인 낭독회


10


한국현대문학관


전숙희


청년문학인 10인의 우리시대 시와 소설


11


한국현대문학관


전숙희


 외국독자와 한국문학의 만남      


12


강좌(3)


이주홍문학관


강남주


 동시,동화 창작교실      


13


추리문학관


김성종


 추리창작교실


14


(재)백담사만해마을


조오현


 토요문학아카데미


15


강연(2)


영인문학관


강인숙


 제2회 문학강연  


16


김유정문학촌


전상국


 제4회 향토작가 알리기 군부대별 순회 문학강연      


17


전시(2)


한국현대문학관


전숙희


 김춘수의 문학과 삶의 공간 전시회


18


조병화문학관


조진형


 조병화 시 생애 사진전


19


캠프(1)


만해기념관


전보삼


 만해학교(문학캠프)


20


교육(1)


경남문학관


정목일


 문학교육프로그램


21


경연(1)


한국가사문학관


정태수


 제6회 전국 가사, 시조, 시 창작대회


3. 무엇을 어떻게 할까


문학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위해서는 당연한 말이지만 문학관 운영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또 당연한 말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운영자 혹은 문학프로그램 기획자가 활발히 움직여주어야 한다. 사람이 살지 않으면 집이 허물어지듯이 문학기획자가 없으면 아무리 훌륭한 문학관이라 할지라도 제대로 운영되지 못한다. 차츰 쇠락해져서 나중에는 정말 좋은 인자가 나타나서 가동하려고 해도 가동되지 않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 것이다.


문학관 문학프로그램 공모지원 신청을 받으며 나는 적잖이 놀랐다. 상당수 문학관의 대표가 지자체장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공무원들이 문학관 운영을? 그 정도로 여력이 되나? 내 의아함은 문학관 관계자와의 통화로 곧 풀렸다. 거의 다 위임, 혹은 위탁 운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 내 고민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지자체가 위임, 혹은 위탁한 단체들의 사업 수행 능력이 대체로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문예진흥기금이나 문학활동지원사업 공모 지원 신청을 통해 받은 그 단체들의 지원 신청 내역을 보면서 나는 한숨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물론 그 단체들이 신청한 사업 중 상당수는 우리 원의 지원대상 선정에서 제외되었다.) 심지어 어떤 문학관은 지역에서 문예진흥원 역할을 하는 곳도 있었다. 문학 관련 단체들의 사업 신청을 받아 그것을 문학관 지원 프로그램에 응모하고 지원대상에 선정되면 나누어 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문학관은 허울만 남게 된다. 문학관은 잠시 머물거나 그냥 스쳐지나가는 역사가 아니다. 문학유산과 문학창작이 교류되는 생성기지여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비춰 볼 때 문학관 운영의 주체는 민간 전문인이 되어야 마땅하다. 위탁이나 위임만으로는 문학관 운영이 활성화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지자체가 문학관 운영을 책임지는 것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운영 활성화에 어긋난다면 원칙이라고 볼 수 없다. 문학관 운영의 제일원칙은 어떻게 하면 문학관이 생명체처럼 가동되도록 만드는가 하는 점에 있다.


자, 그럼 누가 그런 일을 수행한단 말인가. 앞에서 나는 외람되게도 위탁자들의 사업 수행 능력을 의심하는 발언을 했다.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으므로 그들과 같은 단체들은 내가 꿈꾸는 운영자 레벨이 아니다.


나는 보다 더 전문적이고 활동력 있는 전문역량이 이 일들을 맡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문학관 자체 행사로 끝내는 게 아니라, 인접 문화장르와의 연계성도 고려하고 문화관광과 교육까지도 시야를 넓힐 수 있는 문학기획자, 곧 미술에서 말하는 큐레이터 같은 사람들이다. 문학행정도 알고 하나의 지원신청서를 써도 프로로 써낼 수 있으며 문학지도를 가지고 그 지역에서 동원될 수 있는 모든 문학인을 사업에 끌어들일 수 있는 전문인을 기대하는 것이다.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사람을 키우지 않는 문학관 사업은 공허하다고. 사람이 중심에 서서 일하지 않으면 늘 같은 아이템만 반복된다. 문학의 기본 속성이 무엇인가. 차이에 의한 창조와 상상력으로 지은 집이 문학 아닌가. 문학관이 변별력 없이 똑같은 사업만 반복한다고 해보자. 누가 발걸음하겠는가.


4. 나부터 문학기획자가 되자


지금은 양의 시대가 아니다. 질의 시대이다. 질적 제고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도태한다. 이는 비단 문학의 문제만이 아니다. 반도체 산업을 보자. 느슨하게 더디 개발하던 일본 업체들은 사양길을 걷고 있으나 부지런히 질적 제고의 기치를 걸고 뛰쳐나간 삼성은 탄탄대로이다.


이 점은 문학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느슨하게 지원만 바라고 운영하는 문학관은 한 세대가 가기 전에 사람들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말 것이다. 하지만 아주 독자적인 문학프로그램을 꾸준히 개발하여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 문학관은 오래지 않아 중요한 문학 거점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얼마 전 나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 사소한 말의 씨앗 하나가 대중들을 움직이는 힘으로 전화되는 것을 직접 목도한 것이다. 상당한 기대를 품고 미당시문학관을 찾은 내게 미당시문학관은 지은 지 얼마 되었다고 벌써 추레한 몰골이었다. 뭐 좀 아이디어 없을까 생각하다가 떠오른 게 시 <국화 옆에서>의 ‘국화`였다. 국화로 문학관과 미당 묘소를 연결하면 사람들이 관심을 좀 기울여 줄 것 같았다. 미당시문학관을 자기 몸처럼 생각하는 이에게 나는 이 아이디어를 전했고, 그는 놀라울 정도의 뚝심을 발휘하여 국화를 심고 사람들 관심을 촉발시켰다. 이제 문제는 문학프로그램인데,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공간이 열렸으므로 아이템과 실행력을 갖춘 문학기획자들이 분명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나는 이미 그이 스스로가 대단한 문학기획자가 되었으리라 믿는다. 성공적인 문학행사를 만들기 위해 그이는 부단히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문제의식을 느끼는 자가 곧 문제 해결자라는 말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하는 편이다. 나는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이 그러므로 새로운 문학기획자가 되실 것이라고 믿는다. 안 그래도 어려운 터에 또 고민거리를 안겨 드려서 죄송하지만 지금 고민해야 미래의 문학관이 제대로 운영될 것이라는 점을 차제에 기억해 주셨으면 한다. 문학의 위기를 헤쳐 가는 또 하나의 방책은 바로 문학관의 주체인 ‘나`, 여러분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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