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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종 `추리문학관의 어제와 오늘`
글쓴이 : 추리문학관 날짜 : 05.05.18 조회 : 3322

김성종(추리문학관 관장)


1. 설립 경위


추리문학관이 문을 연 것은 1992년 3월이었다. 올해로 13년이 된 셈이다.
추리문학관-좀 엉뚱한 이름이다. 13년 전 추리문학관을 처음 열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좀 이상야릇한 시설, 그래서 호기심으로 한 번쯤 와보는 그런 수준이었다. 문학관이라는 이름을 가진 시설이 국내에서 처음이었으니, 그것도 일반 문학관이 아닌, 한국문단에서 푸대접을 받고 있는 추리문학 분야의 시설이었으니 사람들이 어리둥절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것이야 뭐 나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옳은 일이라고 생각되고,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이면 꼭 하고야마는 성격이기 때문에 나는 그 누구하고도 상의 한 번 없이 추리문학관을 세웠던 것이다. 그리고 추리문학관은 그 엉뚱하고 특이한 점, 그 희소성 때문에 금방 명소가 되고 말았다.

사실 음식점이나 술집, 그리고 러브 모텔로 뒤덮여있는 세상에서 추리문학관이라는 존재는 공공의 선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리고 공공의 문화 창출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소개할 거리가 없던 신문 방송에서는 걸핏하면 추리문학관을 기사거리로 다루었고, 그러다보니 하룻밤 자고난 사이에 추리문학관은 유명해져 있었다.


추리문학관을 세우기 10여년 전, 정확히 말해 1981년 나는 짐을 싸들고 부산으로 내려왔다. 이유는 서울이 싫어서였다. 작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출세하기 위해 서울로 서울로 올라가는데 나는 반대로 서울을 떠났던 것이다. 거의 아무도 만나지 않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나는 혼자 간단히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는데 아주 익숙해져있었다. 글쓰는 사람들이 무리지어 다니면서 술에 절어 횡설수설하는 문단풍토도 너무 싫었고, 그와 같은 풍토에 조금치도 미련이 없었기 때문에 훌쩍 떠나올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것 또한 엉뚱하다면 엉뚱한 짓일 수도 있었다.
부산을 택한 이유는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남쪽 끝이자 아름다운 바닷가라는 점, 그리고 도시 규모가 큰데다 퇴폐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어있어 추리소설을 쓰는데는 그만이라는 점, 그 밖에 교통과 통신이 발달되어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해운대에는 동해를 조망할 수 있는 높은 언덕이 하나 있는데 이름하여 달맞이 언덕이라고 부른다. 정월 대보름이면 달이 뜨는 것을 가장 잘 볼 수 있고, 그때가 오면 달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게 된 것 같았다. 그 언덕은 과거에 골프장이었다고 하는데 당시 내가 가보았을 때는 나무도 별로 없고 건물도 하나 없는 황량한 언덕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보는 바다 경관이 일품이었다. 날씨가 좋으면 대마도까지 잘 보였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180평 되는 땅을 구입했고, 곧이어 지하1층 지상 5층짜리 건물(연건평 500평)을 지었다. 그리고 책을 사들이고, 가지고 있던 책들을 정리하고, 작가들 사진으로 벽을 장식한 다음 추리문학관 간판을 달았다. (엄밀히 말하면 간판이 아니라 조각품이다. 3미터 되는 화강석을 충청도에서 실어와 조각가가 상부에 구멍을 뚫고 중간부분에 추리문학관 이름을 새겨넣었다. 구멍은 총탄구멍을 나타낸 것으로 파괴를 상징한다. 파괴는 결국 창조를 의미하니까.)

주위에서는 사람들이 다니지도 않는 곳에다 추리문학관을 세웠으니 과연 누가 와보겠느냐고 걱정들을 했지만 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무리 심산유곡에 자리 잡고 있는 암자라 해도 올 사람들은 오게돼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오지 않으니 푸른 바다를 우두커니 바라보면서 향유하는 그 고독감과 적막감이 더없이 좋았다. 속으로는 ‘오거나 말거나 문학관’이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그런 시절은 오래 가지 않았다. 방송과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면서 유명세를 타자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이윽고 그들을 상대로 전투 태세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주위에 건물들이 하나둘씩 들어서기 시작하더니 10년 새에 황무지 같던 언덕배기가 빈 땅 하나없이 건물들로 들어차버렸고, 그 가운데서 추리문학관은 더 이상 오거나 말거나 무관심할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추리문학관 대신 레스토랑이나 러브 모텔을 지었다면 떼돈을 벌었을텐데 쓸데없이 추리문학관을 지어 이만저만 손해가 막심하지 않다고 후회도 해본다. 돈을 벌고자 지은 것은 아니지만 앞뒤 계산도 해보지 않고 덜컥 지어 개관했으니 운영상의 어려움은 불보듯 뻔했다.

하지만 추리문학관은 내가 평소에 품고 있는 문학관(文學觀)의 소산이자 한국문학에 대한 묵시적인 도전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기에 나는 그 의미를 평가절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지금까지 외부에 나가 이런 말을 한 적은 없지만 한국문학은 일대 반성을 해야 한다. 다른 장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그 편협성과 그 때문에 빚어진 왜소함을 자각하고 반성하지 않으면 한국문학은 우물 안 개구리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우물 안에서 자기들끼리 잘 낫다고 거들먹거리는 그 모습이라니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그 많은 한국 소설들 가운데 미국에서 영어로 번역되어 소개된 작품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영미권 출판사들이 한국 소설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이것은 한 마디로 우물 안에 갇혀 있다 보니 우물 안의 이끼 냄새는 나지만 바깥 냄새, 즉 태양이 작열하는 대지의 냄새, 다시 말하면 세계성이 없다는 의미인 것이다.

이른바 정통 문학이라는 것 외에는 다른 장르들을 그럴듯한 이유를 들어 경멸하다보니 한국에는 추리문학도, SF소설도, 환상소설도 발달하지 못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이웃 일본만 해도 추리작가가 천 명 가까이 된다. 애거서 크리스티, 코난 도일, 에드거 앨런 포우 같은 거인들이 한국문학을 보면 뭐라고 이야기할까? 문자로 표현되는 모든 문학장르는 자유롭게 공존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문학관이다. 그래서 추리문학관을 세움으로써 나는 편협한 한국의 문학세계에 그 잘못을 깨우치게 하려고 했던 것이다. 일종의 도전장인 셈이었다.


2. 운영상의 어려움


기업처럼 이익을 추구하는 곳이 아닌만큼 처음부터 운영은 어려웠다. 추리문학관은 댓가를 바라지 않고 나무에 끊임없이 물을 줘야 하는 것처럼 계속 투자만 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울 수 밖에 없었다. 10여년 전만 해도 하나밖에 없던 문학관들이 그 동안 20여군데로 불어나 문학관 풍년시대를 구가하게 되었지만, 거의가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어주고 운영비까지 대주고 있기 때문에 운영상의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주어진 예산 내에서 운영하면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추리문학관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런 도움없이 내 손으로 운영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클 수 밖에 없었다.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은 인건비였다. 현재 최소한의 인원인 4명이 근무하고 있는데 지출면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 다음 건물 관리비와 자료 구입비, 그리고 시설 개선 및 보완 순으로 지출이 잡히고 있다. 한 작가를 기념하는 문학관의 경우에는 자료 구입비 같은 것이 별로 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추리문학관은 계속 쏟아지는 추리신간들과 정기간행물들을 구입해야 하고, 불어나는 장서들을 정리하기 위해 책장 같은 시설이 또 필요하기 때문에 거기에 따른 지출이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다.

외부의 지원 없이 홀로 설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가치 있는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보유하고 있는 책들이 수만권으로 불어나고 시설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보니 지출도 갈수록 커지고 있고, 그래서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외부의 지원을 절실히 바라고 있는 실정이다. 혼자 결정해서 세운 것이고, 지금까지 혼자 운영해왔으니, 마찬가지로 문 닫는 것도 간단히 혼자서 해치워버릴 수 있다. 언제라도 문닫을 수 있다는 심정으로 임하고 있으니 괴로울 것까지야 없지만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계속 존속할 수 있으면 좋지 않겠는가.

외부 지원의 경우 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문학관과 개인이 운영하는 문학관은 구별되어 지원받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개인이 세워서 운영하는 문학관의 경우 그 어려움이 훨씬 더 크고 심각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추리문학관의 경우 1년 예산이라는 것도 세우기 어렵다. 그냥 그때그때 부딪쳐가며 살림살이를 하고 있는 것만 해도 기특하다고 할 정도인 것이다.

아무리 형편이 어렵다해도 추리문학관에서는 지금까지 부단히 문화행사를 꾸려왔다. 추리창작 교실을 비롯해서 문화 전분야를 아우르는 강좌, 추리문학의 밤, 추리 연극, 각종 세미나, 겨울 추리여행 등. 좀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요즘은 프랑스 대특강을 지난 해부터 강의해오고 있고, 가을에는 세계문화강좌와 러시아문학 강좌를 개설할 계획이다.


국비 지원의 경우 다음 사항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첫째 인건비 지원이다. 적어도 1인당 법정 하한선 수준의 지원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둘째는 자료 구입비이다. 연 3천만원 정도에서 자료를 구입할 수만 있다면 내실 있는 문학관으로 자리 잡을 수가 있을 것이다.

다시 정리해보면 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문학관, 개인이 운영하는 문학관, 개인이 운영하되 한 개인을 기념하는 문학관, 개인이 운영하되 문학 전체를 아우르는 문학관에 차등을 두어서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문분야의 문학관은 그 가치가 대단히 크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작가는 국내에만 알려져 있고, 그래서 국내에만 한정되어있기 때문에 자료라야 한 줌 밖에 안 되지만 세계적인 작가의 경우는 그 자료가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칼 마르크스 기념관이나 제임스 조이스 기념관, 애거서 크리스티 기념관의 경우 그 자료의 방대함은 보는 이를 압도한다. 지난 한 해만 해도 조이스 축제가 열렸던 아일랜드 더블린에서는 전세계에서 1,000명의 조이스 전문가들이 몰려들어 축제기간 동안에 400편의 논문을 발표했을 정도이니 갈수록 자료가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전문 문학관, SF문학관, 월북작가문학관, 전쟁문학관, 일제시대 문학관, 친일문학관-----앞으로 필요한 문학관에 대해 적어본 것이다. 이런 문학관의 존재야말로 이용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임은 말할 나위없다.


3.문학관이라는 이름의 허상


대부분의 문학관들이 지방자치단체에서 그 지방 자랑거리 내지는 관광용으로 만들다보니 작가 개인의 위상에 걸맞지 않게 그 규모가 필요 이상으로 큰 것들을 볼 수가 있다. 막대한 돈을 들여 지은 거대한 문학관 건물에 비해 그 안에 들어있는 자료들이 그야말로 초라하기 짝이 없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어떤 문학관은 세금 영수증까지 진열해놓은 경우도 있었고, 심지어는 땟국이 흐르는 이부자리까지 보여주는 곳도 있었다. 문학관 안에 무엇을 진열해놓아야 하는지, 그 기본적인 안목조차 없는 문학관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규모가 크면 관리를 위해 직원 수도 그만큼 늘려야 하고, 결국 지출만 늘어날 수 밖에 없어 낭비의 요인이 되는 것이다.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점은 한 작가를 기념하는 문학관의 경우 그 인물이 과연 문학관을 만들어 기념할만한 작가인가 하는 점이다. 그런 것을 따지지 않고 자기 고장 출신이기 때문에 어중이떠중이 작가들을 잔뜩 부풀려 문학관들을 짓는다면 머지않아 문학관 공해 현상이 일어날게 뻔하다. 여기에는 과거의 친일행적도 문제거리로 등장한다. 나중에 친일행적이 문제가 되어 문학관 자체의 운영에 차질을 빚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따라서 한 작가를 기념하는 문학관을 짓는 경우 반드시 진지하게 검토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한 예로 재력을 갖춘 어떤 문인이 있어 문학적 성과는 그야말로 형편없는데 그 자신이, 또는 그의 사후 그 자손이 그를 자랑하기 위해 대규모의 문학관을 짓는다면 그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보기 민망한 일이지만 이런 경우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생존작가의 문학관에 대해서 이야기하겠다. 아직은 많은 숫자가 아니지만 현재 생존작가의 문학관들이 몇 개 세워져있고, 앞으로 또 세워질 계획이라고 하니 그 문제점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솔직히 말해 생존작가의 문학관은 우리 국민들의 조급성이 만들어낸 민망스러운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그 작가가 당대에 역작을 발표했다 해도, 그리고 그의 작품이 널리 읽히고 있다 해도 그 작가를 기념하는 문학관은 그의 사후에 건립하는 것이 올바른 수순이라고 생각한다. 사후에 천천히 그에 대한 재평가를 기다린 후 많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면서 문학관을 세워도 결코 늦지 않을 것이다. 도대체 뭐가 급해서 새파랗게 살아있는 젊은 작가의 기념관을 서둘러 짓는단 말인가! 이것은 분명 부끄러움을 모르는, 너무도 뻔뻔스러운 행태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짓거리인 것이다.

한 작가를 기리는 문학관은 세월이 흐르면 신성한 성역처럼 사람들에게 인식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그와 같은 기념비적인 문학관을 보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런데 앞으로 얼마든지 재평가될 수 있는 모순투성이의 살아있는 젊은 작가를 기리기 위해 문학관을 건립한다는 것은 아무리 좋게 해석하려고 해도 해석이 되지 않는다. 혹시 생전에 전설적인 인물이라도 되었다면 몰라도 국내에 과연 그런 작가가 있는지 자문해본다.


4.맺는 말


어떤 문학관이 바람직한 문학관인가-이 물음에 대해 이제부터 우리는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에 언급한 추세대로 문학관들이 난립한다면 앞으로 문학관 수가 백개 2백개 넘어서는 것은 시간문제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문학관의 수준은 결국 문화에 대한 인지의 수준에서 결정된다고 보면 별로 무리가 없을 것이다. 문화의 요체라고 할 수 있는 문학을 가시적인 것으로 정리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한다면 문화라고 하는 전체적인 틀 안에서 우리의 문화 수준을 끌어올리려는 순수한 노력이 엿보여야 한다. 문화의 틀 안에 아무렇게나 끼어들어가 그 마당을 어지럽힌다면 그것은 없느니만 못하다고 할 수 있다. 문화란 우리 자신의 성실성과 노력, 가치 창조에 대한 부단한 욕구가 만들어낸 미래지향적인 삶의 세계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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